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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가 아니라 생산자의 살림을 먼저 물었습니다. 그렇게 값을 정한 마스코바도와 커피가, 국경을 넘어 조합원의 부엌으로 옵니다.
국경 너머 소농과 조합원을 잇는 두레의 민중교역 파트너
김이 오르는 큰 통 앞에서, 마스크와 위생모를 쓴 일꾼들이 나무 삽으로 갈색 설탕을 뒤적입니다. 눅눅한 단내가 공기 중에 퍼지고, 삽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반복됩니다. 필리핀 네그로스의 사탕수수밭에서 시작된 이 설탕은, 이렇게 사람 손을 여러 번 거쳐서야 봉지에 담깁니다.
피티쿱이 거래하는 이들은 커다란 회사가 아니라 소농입니다. 필리핀 네그로스의 사탕수수밭을 일구는 농민들, 페루와 동티모르, 라오스, 르완다에서 커피나무를 돌보는 농민들. 무역상을 여럿 거치지 않고 생산자와 직접 관계를 맺는 이 거래를, 피티쿱은 민중교역이라 부릅니다.
보통의 거래는 그날그날의 시세를 따릅니다. 사탕수수나 커피처럼 국제 시세의 등락이 큰 작물일수록, 값이 떨어지면 그 타격은 소농에게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피티쿱은 시세보다 생산자가 그 값으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지를 먼저 봅니다. 값을 깎기보다 정당하게 치르는 쪽을 택했습니다.
마스코바도는 사탕수수를 압착해 즙을 짜낸 뒤, 커다란 솥에서 오래 달여 만드는 필리핀의 전통 설탕입니다. 압착하고, 증기로 오래 가열해 졸이고, 넓은 통에 펼쳐 말리고, 봉지에 담는 순서를 사람이 하나하나 지켜봅니다.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사탕수수가 본래 가진 무기질이 그대로 남고, 백설탕에는 없는 깊은 풍미가 있습니다.

커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페루의 고산지대, 동티모르와 라오스, 르완다의 커피밭에서 소농들이 손으로 가꾼 원두를, 피티쿱은 원두와 분쇄, 드립백 여러 형태로 들여옵니다. 나라마다 토양과 고도가 다른 만큼 맛도 조금씩 다르게 나타납니다. 마스코바도와 커피 외에도 볶은아몬드와 캐슈넛, 올리브유, 후추 같은 품목들이 같은 방식으로 조합원의 밥상에 놓입니다.
이 커피들은 나라마다 이름을 그대로 달고 나옵니다. 페루커피, 동티모르커피, 라오스커피, 르완다커피처럼 산지 이름을 상품명에 그대로 남겨 두는 것도, 그 뒤에 있는 농민들의 자리를 지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원두와 분쇄, 드립백으로 형태만 바꾸어 조합원이 고르기 쉽게 했을 뿐, 산지를 감추지 않습니다.
두레가 피티쿱과 처음 거래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조합원이 매일 먹는 설탕 한 스푼, 커피 한 잔이 어느 나라 농민의 살림을 흔들 수도, 지킬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값싼 원료를 찾는 대신 정당한 값을 치르는 거래를, 두레는 오래 이어 왔습니다.

조합원이 마스코바도 한 봉지, 커피 한 잔을 고르는 소비는 단순한 구매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값이 바다 건너 어느 사탕수수밭, 어느 커피밭 농가의 살림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국경을 넘는 거래이지만, 그 끝에는 늘 이름과 얼굴이 있는 소농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