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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내를 위해 달인 첫 한 잔에서 시작된 김포의 발효 생산지. 홍삼은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고, 야채주스에는 물을 5%만 넣습니다. 시간이 맛을 만든다는 믿음으로 30년째 항아리를 지킵니다.
2001년 매실청 한 병에서 시작해 2026년 기준 25년째 이어 온 두레의 발효 파트너
해가 뜨면 손찬락 대표는 마당으로 나갑니다. 이천 평 마당에 줄지어 선 옹기 항아리들. 뚜껑을 하나씩 열어 냄새를 맡고, 빛깔을 보고, 손끝으로 온도를 가늠합니다. 어떤 항아리에서는 매실이, 어떤 항아리에서는 도라지가, 또 어떤 항아리에서는 흑마늘이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익지 않은 항아리는 다시 뚜껑을 덮고, 다 익은 항아리의 원액만 조심스레 옮겨 담습니다. 기계라면 며칠이면 끝날 일입니다. 이 마당에서는 몇 주가, 어떤 것은 몇 달이 걸립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그 답은 삼십 년 전, 한 사람의 부엌에서 시작됩니다.
30대 초반, 사업가로 살던 손찬락 대표에게 어느 날 감당하기 어려운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아내의 건강이 병원에서도 손쓰기 어려울 만큼 나빠진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내의 밥상만은 자신이 차리기로 했습니다. 몸에 좋다는 식재료를 찾아 전국의 산과 들을 다녔고, 자연의학 책을 밤새 파고들었습니다. 제철에 나고 자란 먹거리가 가진 힘을 깨닫고는, 좋은 채소를 구해 직접 달이고 짜서 야채주스와 달임즙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거르지 않고.
아내의 건강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회복되어 갔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그는 확신하게 됩니다. 정직한 재료와 정성스러운 시간이 사람의 밥상을 바꾼다는 것을. 그 믿음을 담아 2008년에는 책 우리 몸은 자연을 원한다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아내를 일으킨 전통 중탕 방식이 이웃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하던 장사를 접고, 솥 네 개를 걸었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먹거리만 만든다는 원칙 하나로 버틴 세월에 솥은 스무 개가 되고, 백 개가 되었습니다. 1996년 작은 건강원에서 출발한 장수이야기는 2002년 김포에 농장을 마련했고, 2016년에는 사업 전체를 김포로 모았습니다. 이천여 평의 마당에 항아리가 늘어선, 지금의 모습입니다.
대표 생활재인 홍삼을 보면 이 집의 성정이 그대로 보입니다. 농축액을 사다 쓰면 편하지만, 수삼을 직접 삽니다. 그리고 청주를 뿌려 찌고 말리기를 아홉 번 반복합니다. 9증9포, 손이 많이 가서 이제는 하는 곳이 드물어진 옛 방식입니다.
"조상들이 홍삼을 만들 때 9증9포하는 이유는, 찌고 말리는 과정 속에서 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발효가 일어나야 인삼의 유효성분을 더욱 많이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9증9포하고 있습니다." ― 손찬락 생산자

흑마늘은 기계로 며칠 만에 만들 수 있지만, 항아리에 담아 수증기로 데워 가며 꼬박 스무하루를 기다립니다. 장어 진액에 쓰는 장어는 갯벌에서 사십여 일을 지낸 갯벌장어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넣습니다. 셈이 빠른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선택들입니다. 이 집은 그 선택을 삼십 년째 반복하고 있습니다.

야채주스 한 팩에는 무농약 무·당근·우엉·무청·표고버섯 다섯 가지가 달여져 들어갑니다. 물은 5%뿐입니다. "시중 제품들에는 물이 70~80% 이상 들어가는 반면, 저희 야채주스에는 물이 5%밖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맛이 훨씬 진합니다.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물을 타서 드시면 됩니다." 생산자의 말입니다.
이 집의 생활재는 계절마다 맛이 조금씩 다릅니다. 갈변이 생기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합니다. 맛과 색을 똑같이 맞춰 주는 첨가물을 넣지 않아서 생기는, 정직한 차이입니다. 흔들어 드시면 됩니다.
2001년, 조합원에게 내놓을 좋은 매실청을 찾아 수소문하던 두레생협 직원이 김포의 그를 찾아왔습니다. 처음에 그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생협이 말하는 가치,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이 서로를 믿는 관계라는 말을 듣고는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 악수가 2026년 기준 25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재료의 이력에도 그 관계가 담겨 있습니다. 생포도주스의 포도는 상주땅모임에서, 야채주스의 채소는 제주유기농에서, 발효에 쓰는 원당은 필리핀 네그로스 소농들이 만든 마스코바도에서 옵니다. 한 병 안에 여러 생산자의 밭이 함께 들어 있는 셈입니다.

엿기름만으로 삭힌 조청, 된장과 고추장, 산야초 숙성액, 그리고 발효의 끝이라 불리는 식초까지. 장수이야기의 모든 생활재에는 같은 믿음이 흐릅니다. 시간이 맛을 만들고, 정성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

아픈 아내를 위해 달였던 첫 한 잔이, 이제 수만 조합원의 식탁에 오릅니다. 발효는 옛 방식 그대로 항아리에서, 보관과 포장은 HACCP 기준의 공정에서. 김포의 마당에서는 오늘도 항아리들이 조용히 익어 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밥상에 오를 그날을 기다리면서.
장수이야기의 생활재 가운데는 흑염소액기스도 있습니다. 흔히 흑염소는 특유의 누린내 때문에 먹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장수이야기는 전남 곡성의 한 농장에서 무항생제 인증과 동물복지인증을 함께 받은 흑염소를 들여와, HACCP 인증을 받은 전용 도축장에서 위생적으로 손질한 뒤 원료로 씁니다.
냄새를 잡는 비결은 배합비입니다. "본초학을 공부하면서 쌓은 경험과 오랜 연구 끝에 찾은 배합비대로 약재를 넣어 흑염소 특유의 냄새를 잡습니다." 손찬락 대표의 설명입니다. 끓이는 온도도 우유를 저온살균하듯 낮춰, 균을 없애는 데만 급급하지 않고 단백질이 변성되지 않도록 살균 공법을 따로 마련했다고 합니다.
손찬락 대표는 지금의 방식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생산했다면 지금보다 더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첨가제 없는 건강한 세상을 추구했던 초심을 그대로 유지하며 생활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길을 굳이 택하는 이유가 이 한마디에 담겨 있습니다.
2024년 초여름에는 자주관리사 점검단이 6년근 홍삼스틱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다녀갔습니다. 법적 관리부터 원료 이력, 공정, 이물, 위생까지 다섯 항목 평가에서 모두 만점을 받아 합계 100퍼센트라는 드문 성적표가 나왔습니다. 홍삼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순한 맛과 들고 다니기 좋은 스틱형이라는 소감도 함께 적혔습니다.
점검일지는 장수이야기의 출발도 다시 전합니다. 손찬락 대표가 건강이 좋지 않던 아내를 위해 1996년부터 자연 그대로의 먹거리를 연구한 것이 이 생산지의 시작이었습니다. 만들 때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 것은 첨가물 없이 원재료가 지닌 맛 그대로 달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점검단은 오히려 믿음이 간다고 일지에 남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