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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한과 생산 현장
생산자

화성한과

01 생산자 이야기

반죽을 저울에 올리는 손끝부터 조청 솥에 담그는 순간까지, 화성한과는 어느 하나도 서두르지 않습니다.

생산자 요약
  • 이번 주 만나는 생활재 · 3종
  • 생산 현장 사진 · 4장
약과·유과·쌀조청 ― 두레의 전통 한과 파트너

반죽 한 덩이가 저울 위에 올라간다. 정량을 맞추는 손끝이 조심스럽다. 옆 튀김솥에서는 기름 끓는 소리가 멎지 않고, 그 옆 조청 솥에서는 단내가 은은히 퍼진다. 화성한과의 하루는 이 세 가지―계량, 튀김, 조청―를 오가며 채워진다.

저울 위에서 시작하는 반죽

한과는 재료보다 시간이 많이 드는 과자다. 반죽을 삭히는 시간, 말리는 시간, 기름에 지지는 시간, 조청을 입히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야 유과 특유의 바삭함과 약과의 촉촉함이 나온다. 여름과 겨울, 반죽이 삭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계량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날의 온도와 습도를 손끝으로 먼저 가늠한다.

꽃 모양으로 빚어 기름에 지지다

계량을 마친 반죽은 틀에 눌려 꽃 모양으로 빚어진다. 약과는 이렇게 얇게 빚은 반죽을 기름에 지진 뒤 조청에 담가 맛을 입히고, 유과는 찹쌀 반죽을 삭히고 말려 튀긴 뒤 고물을 묻힌다. 같은 조청을 쓰지만 만드는 방식이 서로 다른 두 과자가 화성한과의 대표 품목이다.

꽃 모양 틀에 빚어지는 약과 반죽

조청은 사지 않고, 쌀로 고아 씁니다

조청을 사서 쓰면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런데도 화성한과는 쌀을 직접 고아 조청을 만든다. 시판 조청보다 손이 몇 배는 더 가지만, 단맛의 결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은은한 단맛은 달지만 무겁지 않아 커피 한 잔에도, 차 한 잔에도 잘 어울린다.

갓 튀긴 약과를 조청에 담그는 순간

기름에서 건져낸 약과는 뜨거운 채로 조청 솥에 옮겨진다. 국자로 고루 뒤적이는 이 순간이 맛을 가른다. 서두르면 조청이 겉만 스치고, 너무 오래 두면 결이 무너진다. 강석찬 대표가 이끄는 작업장에서, 이 담그는 시간만큼은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갓 튀긴 약과를 조청에 담그는 손길

명절이 아니어도 만드는 과자

명절 대목이 지나도 화성한과의 작업장은 쉬지 않는다. 평소에도 약과와 유과, 쌀조청을 찾는 조합원이 있어서다. 명절 한정 과자로 남겨 두지 않고 사시사철 만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명절이 아니어도 약과나 유과 한 조각을 꺼내 먹는 날이 있다. 저울 위 반죽, 끓는 기름, 조청을 오가는 그 손길이 조합원의 평범한 오후 한 조각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레이야기에서 만난 화성한과

화성한과의 시작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업대학을 나온 강석찬 대표는 사람이 사는 데 먹거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귀농을 택했지만, 정작 농사만으로는 빚만 늘어가는 시절이었다. 자연히 눈을 돌린 곳이 농산물 가공이었다. 식혜도 생각해 보았지만 시설 부담이 컸고, 떡은 명절에만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걸렸다. 반면 한과는 평소에도 주전부리로 즐길 수 있겠다 싶어 전통 한과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생협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 찹쌀현미엿강정을 통해서였다. 기름 대신 소금으로 튀겨내는 방식을 찾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옛 문헌만 보고 모래에 튀겨 보다 실패한 뒤 튀밥을 잘 만드는 곳을 수소문해 겨우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소금으로 튀긴 엿강정을 생협에 내놓았더니 반응이 좋았고, 그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전통 식품의 맛을 지키는 일은 강 대표의 아내이자 브랜드를 함께 이끄는 송희자 실장의 몫이기도 하다.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전통 조리법을 익힌 그가 있어 방부제나 색소 없이도 맛과 품질을 지켜올 수 있었다.

우리밀로 약과를 처음 만들던 때는 순탄치 않았다. 도정 기술이 지금 같지 않아 통밀가루에 가까운 밀가루로 빚다 보니 약과가 딱딱하다는 항의 전화를 여럿 받아야 했다. 그때마다 아직 연구 중이라 양해를 구했다는데, 한참 뒤 그 조합원에게서 많이 나아졌다는 전화를 다시 받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종갓집 며느리라는 어느 조합원이 비법 노트를 들고 하룻밤을 묵으며 손수 알려주고 간 일도 있었다니, 조합원과 생산자가 서로를 키워 온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