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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찧는 순간부터 낡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원주 호저면의 도정공장은 재고를 만들지 않습니다.
조합원과 생산자가 4억여 원을 함께 마련해 이 도정공장을 지었습니다.
새벽, 원주 호저면 도정공장 문이 열리면 갓 찧은 쌀 냄새가 마당까지 퍼진다. 컨베이어 벨트가 덜컹이며 돌고, 포대를 옮기는 손길이 바빠진다. 오늘 도정할 양은 어제 들어온 주문만큼, 딱 그만큼이다. 이 공장은 쌀을 쌓아두지 않는다.
1989년 4월, 원주 호저면의 작은 교회에서 목사와 농민들이 모였다. 농사만 짓자는 모임이 아니었다. 마을 구판장과 미장원, 참기름 공장을 함께 꾸리며 농촌이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았다. 그렇게 시작된 소비조합이 2004년, 농민조합원과 원주생협이 함께 돈을 모아 농업회사법인이 되었다.
2009년, 조합원과 생산자가 4억여 원을 함께 마련해 친환경 벼 전용 도정공장을 세웠다. 원주·홍성·횡성 등 두레생협 생산자의 친환경 벼만 이 공장을 지난다. 관행쌀이 들어올 일이 없어, 섞일 걱정도 없다.
쌀은 찧는 순간부터 낡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공장은 재고를 쌓지 않는다. 주문이 들어온 만큼만, 그날 찧는다. 도정하고 사흘 안에 매장에 닿는다. 색이 살짝 어두운 건 시중보다 한두 분도 덜 깎았기 때문이다. 많이 깎을수록 색은 희어지지만, 쌀겨와 쌀눈의 영양도 함께 깎여 나간다.

제초제 대신 우렁이가 논에 들어가 김을 맨다. 볍씨는 한우 축분을 발효시킨 거름을 먹고 자란다. 도정을 마치면 볏짚은 소의 여물이 되고, 왕겨는 축사 깔개가 되고, 쌀겨는 다시 논의 퇴비가 된다. 청치와 싸래기는 소와 닭의 사료로 돌아간다. 버려지는 것이 없다.
원주생명농업 노홍열 팀장은 회원생협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어 조합원의 마음을 잘 안다고 말한다.
"저도 회원생협에 있어 봤었기 때문에, 조합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안심하고 드실 수 있는 쌀을 조합원 여러분께 공급하기 위해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노홍열 팀장

오늘도 도정공장은 어제 들어온 주문만큼만 쌀을 찧는다. 조합원이 함께 지은 이 공장에서, 원주의 논과 두레생협의 밥상이 이어진다.
벼가 쌀이 되기까지 여러 손을 거치지만, 그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고비는 도정이다. 어떻게 찧느냐에 따라 쌀의 영양과 품질이 갈린다.
전용 도정공장이 없던 시절, 원주생명농업은 외부 시설에 도정을 맡겨야 했다. 친환경 벼가 관행농법으로 지은 벼와 한 시설에서 섞일 우려가 있었고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불편을 넘어서고자 조합원과 생산자가 힘을 모아 자체 도정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공장이 생기면서 달라진 것은 선택의 폭이다. 같은 벼 한 포대라도 현미로, 오분도미로, 칠분도미로, 백미로 원하는 도정 정도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조합원이 바라는 방식 그대로 쌀을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공장 마당에는 1톤들이 포대를 가득 실은 트럭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도정 과정에서 나오는 왕겨와 쌀겨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다. 도정 하나에 쌓인 이런 정성이, 원주의 논과 두레생협의 밥상을 잇는다.
자주관리사 점검단이 여러 해에 걸쳐 다녀간 원주생명농업에는 스물네 명의 생산자가 부추·감자·대파·상추 같은 열여섯 품목의 채소와 복숭아, 쌀, 잡곡을 나누어 짓는다. 15년 넘게 유기농 부추를 길러 온 이영철 생산자, 채소작목반을 이끌며 감자와 방울토마토를 살피는 조수행 반장처럼 저마다 맡은 밭이 있고, 연로한 나이에도 복숭아 묘목을 새로 심는 생산자도 있다. 당장의 수익이 아니라 미래에 투자하는 일이라는 그 말을, 점검을 다녀온 자주관리사들은 오래 마음에 담았다고 적었다.
김장철이면 농산팀 담당자가 특파원처럼 산지에 머문다. 정선의 김선태 생산자는 기후 위기 속에서도 통배추를 아기 돌보듯 길러냈고, 수확한 배추는 밭이 아니라 원주생명농업 센터로 옮겨 무게와 겉잎 상태를 한 번 더 선별한 뒤 망에 담긴다. 노윤배·박영학 생산자의 알타리무와 동치미무, 이완용 생산자의 무까지, 갈라짐이나 병이 없는지 눈으로 확인한 내용이 좋은 소식이든 아쉬운 소식이든 그대로 조합원에게 공유된다.
요즘은 영농일지도 다달이 조합원에게 전해진다. 한겨울 호저면 하우스에서 감자를 부직포로 덮어 보온하고, 횡성의 하우스에서는 땅두릅과 양파가 자라나는 모습이 사진과 함께 담긴다. 씨앗부터 김장까지, 한 해 농사의 전 과정이 조합원의 눈앞에 놓이는 셈이다.



